2016년 1월 13일 수요일

음악과 위안 1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산울림 – 회상을 듣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출근하면서 그리움, 떠남, 나한테는 특별히도 사별,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었는데, 회사에 도착한 후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전화해 보니, 담당한 아주머니가 지난 화요일에 우리 만난 날 밤 아들이 갑자기 운명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온 이유는 이 아주머니가 어린 손자들, 며느리를 위해서 (일을 해야하고), 그리고 죽은 아들을 잊기 위해서라도 사무실에서는 다음주 복귀를 할 것이라고 하며, 혹시 더 빨리 다른 직원이 빨리 필요한 지 물어보았고, 난 푹 시간을 드리고 우린 다른 중개업자 필요없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삶과 죽음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음을 느낀다. 
무슨일로 어떻게 될 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인데, 남들과 비교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가.
삶이 누구의 잣대로든 본인의 잣대로라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집 아파트 천창 수리한 핸디맨 청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엔 안간 듯 싶다. 집에 키보드, 기타, 베이스가 있는 것을 보고, 자기 밴드 명함을 놓고 갔다. 가족들은 돈벌러 오클라호마나 달라스에 가서 살고, 본인만 여기 남아있다고 들었다. 
찰리파커가 캔사스 출신인데 이곳에 와서 한번도 클럽에 가본 적이 없다. 문득 에피소드가 있던 의미있는 노래들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기타를 썩 잘 치시던 분도 아니고, 음악을 다양하게 들으신 분도 아니다. 
아버지가 음악을 계속 즐기셨다면, 술을 더 잡수셨을까. 내가 처음 중학교 실기 시험 대비 곡을 들려드렸을 때 빙그레 웃으셨었는데, 그 이후로 머리 굵어진 이후로는 그런 멋적은 일은 중단했었다. 내가 학교 성적으로 아버지께 웃음을 안겨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피아노는 혼자 몇 년 퉁탕 거리다가 그만두고, 딴엔 테입에 녹음도 해보곤 했던 기타도, 고등학교 이후로는 중단했다.
그 이후로는 소비자의 길로만 갔다. 
기분에 취해서 슬플 땐 슬픈노래 기쁠 땐 기쁜 노래를 듣다가, 나중엔 슬프지만 기쁘기를 바라고, 기쁘지만 회한이 느껴진 곡들을 좋아했었다.
그렇게 감정을 소비해서, 절제된 퓨전재즈보다는 원시적인 자극을 원했었다.
이제는, 그냥 덤덤한 곡들을 듣게 된다. 지리적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상처가 아물어서일까 싶기도 하고,.. 
어떨 땐 오히려 덤덤한 곡이 더 여운이 남는다. 해소가 안되어서. 눈물이 안나와서. 계속 생각이 난다. 미운 그 양반이..
아프시기 전에 밉다고 말이라도 해볼껄.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로만 여겼던 노래가, 오늘은 다르게 들렸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 곳에 서서 조금씩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수 없었지
미운건 오히려 나였어

그래도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내게 어떤 음악이 좋다 그런 취미에 대해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했던 곡들...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말해주고 싶다.